※ 다음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비성경적 현실과 각종 부패에 통탄하며 고뇌하다가 성경대로 믿는 믿음 안에서 답을 발견한 한 사모의 편지입니다. 동감하시는 많은 분들의 메일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 되시는 김 목사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리며 한국일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펜을 들었습니다. 글을 처음 대할 때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오나 매주일 글의 "제목"들을 대하며 전해 주시는 말씀이 경고의 말씀으로서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이 시대를 향한 외침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어찌해야 될까요! 늪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목사의 사모로서 지칠 대로 지쳐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구나."라는 말만 나올 뿐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혼탁한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보다 더 나은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훗날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얼굴은 똑바로 들 수 없지만 주님 앞에 책망 받을 것 없이 서기 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터 현장(교회, 교회 주변, 가정)에서 본이 되고 덕 있는 삶으로 주님께 기쁨이 되고 성도님들에게 도움이 되고 빛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안되지! 그렇지 못하면 손가락질 받지. 부끄러운 일이지. 잘못된 일이지,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께 책망 받지.'
조용히 상황을 진단하며 긴긴 시간 마음이 편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어른 되시는 분을 찾아 여쭙고 의논드리고, 지도받고 격려 받기를 열망하고 두루 살폈으나 이런 저런 여건이 겸하여 꼭 찾아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2:24 말씀으로 '썩어야 된다, 썩지 아니하면 움이 나올 수가 없으니 썩어야 한다. 썩는다는 것은 죽는 것이다. 죽어야 된다. 소리가 없어야 되며 수고함과 희생하여야 된다.'는 생각을 되뇌곤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9:22 말씀을 붙들고 '내 주님께서 피를 흘려주셨는데 나는 땀 흘리기를 피 흘리듯 애써야지. 피 흘리시며 나의 못된 죄들을 사하여 주셨는데.' 하며 그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저만 편히 앉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8의 말씀 붙잡고 선교하는 자세로 힘썼습니다. 내가 직접 입술을 열어 증거하지 않아도 목사인 남편을 내조함으로써, 그리고 교인들을 상담하며, 격려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증인의 삶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매사에, 모든 것에 충성, 봉사, 희생하며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발걸음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쉴새없이 그냥 일거리가 생기는 대로 숨가쁘게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발자취를 생각하면서(딤후 4:7-8) '나는 아직도 달려갈 길을 더 달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고달플 때는 '내가 보람 있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도 했습니다. 수고가 있으므로 때로는 '하나님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가 없어요!' '어찌 다 감당하오리까?' 하면서 감사의 제단도 쌓았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마음의 평강이 없었습니다.
지난 날 어렸을 때 "예수님의 일대기"라는 영화 필름을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에서 흘리시는 피가 빗물과 합하여 흘러 흘러 땅을 적실 때 내 몸 속에까지 흐르는 것 같은 마음으로 엉엉 울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연필 하나 주워 내 것 삼은 것까지 생각나게 해 주셔서 자백 드리며,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한 끝에 어린 마음에 교회 헌금 시간에 헌금 드림으로써 해결한 적도 있었습니다.
청년 때가 되어 '내 신앙의 척도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내 신앙의 척도'(그때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용어가 익숙치 않았습니다)가 어느 단계인가 궁금하고 답답하여 갈등하다가 도마에게 말씀해 주신 요한복음 20:29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으로 혼자 억지로 답을 삼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 확실히 모르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그래도 시원하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돼서 에베소서 2:8의 말씀에 붙잡혀 그때에야 "구원의 확신"을 갖고 마음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영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밤에 뒤죽박죽 신앙생활 하던 것들을 밤을 새우며 진단했습니다. 잘못 살았던 것들을 어찌 다 쓸 수 있겠습니까!
그 후에도 무엇인가 한국 교회들의 문제점을 꼭 집어내어 진단하지는 못하면서 그저 '이래도 되는가!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눈앞에 닥치는 일에만 열심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쌓여갔습니다. 저는 이미 분별력을 잃은 자로 병들어 있었으며, 육신이 먼저 병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혼도 깊은 병에 빠져 있음을 몰랐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도 교회 사역에 빈틈이 생기면 안되니까 조직 속에서 습관적으로 나의 책임을 감당해 왔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라가 왜 이래요? 정치인들이 왜 이래요? 사람들이 왜 이래요? 신앙 좋은 믿음의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는지, 어디서 무엇 하는지... 주님! 신앙 좋은 믿음의 사람을 세워 믿음으로 대통령 일을 감당케 해 주시고 국회의원도 세워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게 해 주세요! 남과 북은 어떻게 해요! 민주화는 어떻게 해요! 교회는 왜 이러는 지요? 교회 목사님들은 왜들 이러는 지요? 교파는 왜 이렇게 많이 갈라지며, 교파마다 총회 때가 되면 왜 그렇게도 시끄러운 지요?'
총회가 모이는 것은 "거룩한 자들"이 모여 말씀 안에서 거룩한 일들을 건전하게 결정하여 거룩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모임인데, 과연 그 모임에서 일어나는 다툼들이 진리를 수호하고 비진리를 배격하기 위한 다툼이었을까요? 교회는 부드럽게 위로하면 그만이고, 잘못이 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넘겨 버리고, 싸움을 해도 말리지도 못하고, 책망도 적당히 해 버리는 통에 계속되는 시끄러움을 해결하지 못한 채 문제를 안고 1년, 2년 넘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목사님들의 잘못된 일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 처음에는 설마 하며 믿지 못해 하다가 계속해서 일련의 사건들을 듣게 되면서 저는 멍청해져 버렸고 이제는 무감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 현실을 정확히 비판한 어느 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국이 기독교 100년을 지나면서 기독교인이 1/4이나 되는데 주로 기독교인은 지식층이 많으므로 신앙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를 생각할 때 1/3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의 생활 현장에 기독교적인 삶이 눈에 안보이고 오히려 죄악된 상태로 혼탁한가! 교인으로서 교회 생활 따로, 즉 믿는 자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만 보이고 교회 밖 생활은 따로 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고치자." 저도 공감하며 기도 드리면서 한국 교회가 변화되기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언젠가 하늘에 별들을 쳐다보며 우리 민족을 영적으로 인도할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10명 남짓 이름들을 떠올려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경건의 시간에 에스겔 3장의 말씀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으며, 그냥 넘어가려 해도 두려운 마음에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으로는 "네가 잘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한 것이 더 많은데 무슨 다른 사람을 깨우친다는 말이냐?" 스스로 책망하였습니다. 하오나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을 장악하셔서 저는 만사를 제쳐놓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5일 동안 비가 죽죽 내리는데도 느끼지 못한 채 울면서,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면서, 종이에 글을 쓰고 찢고, 쓰고 또 찢고 하면서 하루 동안에 겨우 한 장을 채우면서 10장을 썼는지 20장을 썼는지요. 전하였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휘청거리다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틀에 박혀 있구나. 좋은 것도 몸에 익숙해지고 좋지 않은 것도 몸에 익숙해짐으로 무엇이 좋은 것이며, 무엇이 좋지 않은 것인지 모르게 되었구나.' 생각하면서, 결국 어지럼증이 왔습니다.
기도 모임, 금요 경배와 찬양 모임, 성경공부, 각종 세미나 등 좋은 것은 다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저대로 마음으로 몸으로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엉뚱한 세상 것에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는 일에 빼앗깁니다. (구원에 대한 관심은 멀리한 채) 어떤 때는 터무니없게 느껴져 '정말 이래도 되는가? 마귀가 내 마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 이제 절대 속지 말자.' 다짐하곤 했습니다. 저는 물건을 찾는 데(나의 어린 시절엔 살림이 간단했는데) 시간을 많이 뺏겼습니다. 그 외에도 시간을 빼앗긴 일들이 여러 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휘말려 저는 의욕을 잃고 무기력한 자가 돼 버렸습니다. 발버둥치며, 몸부림치며, 허우적대며, 탄식하고, 한탄하고, 신음하며 몸살을 앓던 것도 지나가고, 거룩이 무엇인지, 거룩한 자가 어디 있는지, 거룩을 잃어버리고, 결국 거룩이 어리석은 것이 돼 버렸습니다. 악을 보아도 그냥 그냥, 옳지 않은 것을 보아도, 욕을 먹어도, 심한 말을 들어도, 심한 말들이 돌아가도 그냥 그냥 넘겨버립니다.
마약, 알코올, 담배 중독만 중독이 아니라 불평, 원망, 여러 가지 악으로 혼이 무엇엔가 중독에 걸렸습니다. 영이 무엇엔가 중독에 걸렸습니다. 고치지 못하고 중독으로 인하여 마비가 왔습니다. 반응을 나타낼 줄 모르는 자, 성낼 줄도 모르고, 옳은 말 할 줄도 모르는 자, 또 울지도 못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거의 십여 년 전에 뵌, 나병 환자로서 그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신 유 목사님이 가끔 떠오릅니다. 유 목사님의 말씀 중에 찬송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주 하나님, 날 구원했으니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계속하여 이 곡조에 가사를 바꾸어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으로 끝나며 우셨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저는 그 찬송가사를 "똑같아요, 똑같아요" "똑같아요 주님" "똑같아요, 똑같아요" "똑같아요 주님!" 마음 속으로 울면서 불러 보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큰 죄와는 거리가 좀 멀다고 생각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죄가 더 큰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한 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 돼.' '나는 고집이 있어서 옳다 하는 것은 끝을 내야 돼.' 저는 욕심이 죄인 줄도 모르고, 그 일이 육신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진단도 못했으며, 또 고집이 죄인 줄도 모르고 육신에서 나온 것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진단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은 죄의 종목이 얼마나 많은 지요. (마 5:43-45, 마 6:12-15, 마 18:35, 마 15:19, 롬 1:28-32, 갈 5:19-21, 딤후 3:1-5)
저는 죄목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참 헤맸습니다. 그 죄악들을 어찌 다 토해낼 수 있을지요. 산 덩어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편안치 못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살아야 되겠다!'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육신에 의해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타인의 의지로 작은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또 작은 기관에도 참여하였고, 또 개인으로도 불러 기도 받게도 해 주셨는데, 저는 그때 혀가 자꾸 말리므로 사탕도 먹고 껌도 씹고 딱딱한 씨앗도 입에 물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어쩌면 스트레스로 그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어느 기도 모임에서 언뜻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할 때는 기도가 잘 드려지지 않아 새벽기도 예배에 매일 가도 1시간 정도는 끙끙 마음만 정돈하다 시간이 다 지나는 형편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잘하는 "방언"을 나도 달라고 기도 드려야지. 남들은 다 저렇게 잘하는데, 평신도도, 어린 사람들도, 어린 성도님(교인)들도, 목사님들도, 여자 사역자들도 권위 세우며 저렇게 유창하게 잘하는데, 그리고 방언으로 비밀의 간구를 시원하게 주님께 기도를 잘 드리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하고 있었는가. 아마 내 혀가 가끔 꼬부라지는 것은 나에게도 방언을 주신 것인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혀를 자꾸 깨물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도 모임이 끝난 후 내가 방언을 해 볼 터이니, 좀 들어 보라고, 또 다른 유능한 여전도사님에게도 내가 방언을 해 볼 터이니 진짜 방언인지, 그냥 혀 꼬부라진 소리인지, 아니면 마귀 방언인지 분간 좀 해 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습니다. 유창하게 되지 않아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기도원에는 아무 데나 다 가지 않고 골라서 또 다른 집회에도 아무데나 다 가지 않고 골라서 조용히 부지런히 잘 따라다녔습니다. 은사를 많이 주셨으니 잘 감당하라고 안타까이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힘들 때마다 전화하여 만나자고 하며 기도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긴 하지만, 지금의 나의 열매는, 그들의 열매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입신"하는 일에도 잠깐 동안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내가 자빠지면, 주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과 알맞는 것을 직접 말씀해 주실테니, 얼마나 시원할까!'
또 성경을 읽는 데 집중이 안되니 성경을 기록하자, 그러면 쓰면서 집중이 되리라 하는 생각에서 성경 기록 노트에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가 보기도 했습니다.
1년에 두어서너 번 열리는 부흥회 집회가 있을 때면 교회적으로 마지막 날엔 강사님께 안수기도를 부탁드리곤 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목회(?)하는 저희는 "성도님들이 6개월에 한 번씩 이렇게 별미를 먹어야 새롭게 열심을 내지요." "야릇한 알력들이 일어나던 것들도 가라앉구요." "참 필요해요." 하며 부흥집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요. 한번은 어느 미팅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만남의 시간, 소개의 시간, 교제의 시간, 식사시간을 가지며 친교를 나누었는데 "우리 교회 부흥회가 어제 끝났는데 목사님께서 (부흥강사) 어찌나 웃기시는지 참 재미있었어. 어찌나 웃었는지 스트레스가 다 없어졌다구." 하면서 설교 중 말씀하신 농담, 예화, 웃기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함께 웃자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대화에 동참하며 실컷 웃던 저였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못마땅한 일이나 불의한 일이 있을 때면 이해하는 방향으로, 교회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자세입니다. 어느 젊은 여성도님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여신도들에게 이성적으로 마음을 빼앗기니 평교인인 우리 남편들은 집집마다 어떻겠어요? 뻔하지요." 이 말을 들은 저는 얼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갖가지 모임에 따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 아프고 속상한 상황들이 많이 있는데, 어찌 다 말하지요! 목사님께서도 더 잘 아시겠지요?
어느 사모님의 설문지가 우편으로 왔습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찌르는 갖가지 질문이 낱낱이 적혀 있음을 볼 때 동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처녀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여러 과목을 듣는 가운데, 영적 각성 운동이 18세기 이후로는 미국과 세계적으로 아직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논문을 쓰기로 정하였는데, 이에 관해 번역된 책이 없으므로 논문을 쓸 수 없을 정도인 데 대해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영이 죽은 것인가 반문해 보았습니다.
이미 죄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으로 죄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짓고, 사망이 와 버렸습니다(약 1:15, 롬 5:12).
왜 한국 기독교 안에, 그 수많은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태동"하여 깃발을 들고 목숨을 내어놓는 자가 없는가 묻고 싶습니다. 아무도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이 돼 버렸습니다. 주님께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13)는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이러한 혼과 영의 병이 결국 육신의 아픔(신경통 종류)으로 이어졌으며, 다니던 직장도 쉴 수밖에 없었고, 치료받으러 다니며 온 몸이 떨리고 모든 세포가 다 아프며 걷지도 못하는 고통이 왔습니다. 한의는 한 달 쉬면서 치료하면 된다고 하는데, 땀도 잘 흘릴 줄 모르던 제가 식은땀이 흠뻑 나온 후엔 기운이 쭉 빠지고 힘을 잃곤 했습니다.
"오한"이라는 떨림이 오면(일평생 처음 있는 일)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조금만 선뜻 추우면 떨림이 옵니다. '이런 것이 혹시 간질병인가?' 혼자 속으로 물어 보면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고통은 낙심과 고민이 육신으로 오는 아픔이었습니다. '내가 선을 행했어야 되는데 하는 척하고 넘긴 것이 있는가? 순수하고자 했던 마음이 어느새 계산적이 되었는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던 나는 어느새 초점을 잃었는지, 어느새 감정에 따라 마귀의 다스림을 받아 나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리하며 눈물 흘리며 날마다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차, 내가 그간도 마귀를 대적할 줄 몰랐지! 마귀를 대적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딸의 권세로 명하자.' "나사렛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를 괴롭히는 악의 세력아, 어두움의 세력아, 묶음을 놓고 물러가거라! 힘을 잃을 지어다!" 명령했습니다. 은사주의자들과 같이 크게도 못하고, 강하게도 못하고, 쎄게도 못하고, 덜덜 떨면서 개미소리같이 명령했습니다.
7/19/01 날짜로 적어 놓았던 종이 쪽지가 눈에 뜨입니다.
"주님, 저를 무엇에 쓰고 계시나이까! 왜 아직 나에게... 걷게 하시나이까. 운전할 수 있게 하시나이까. 먹을 수 있게 하시나이까. 맛을 잃지 않게 하시나이까. 잘 수 있게 하시나이까. 전화할 수 있게 하시나이까. 베풀게 하시나이까. 건강을 주시나이까. 일할 수 있게 하시나이까. 생각을 맑게 하시나이까. 주님을 사모하게 하시나이까. 숨쉬게 하시나이까. 오늘도 생명 허락하시나이까.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어떻게 하오리까. 더 이상 대접받을 수 없어요. 심방할 수 없어요. 전화심방 할 수 없어요. 새 교우 환영 할 수 없어요. 나를 통하여 주님의 어떤 사역이 나타나야 합니까?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합니까? 어떻게 쓰시려나이까?" 저는 이렇게 오늘도 여전히 여쭙고 있습니다.
느긋하던 친구가 영의 양식을 먹기 위하여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얼굴을 돌리며 다닙니다. 이제는 지쳤는지, 아니면 더 꾸물거릴 수가 없는 심정인지 발을 내디뎠는데 기갈입니다.
나는 오늘도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오늘도 또 다른 교회 행사와 교회, 참석한 교인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느 장로님의 안타까워하시며 "이제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절망과 포기의 말씀이 아닌가요!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왜 이렇게 되어 왔는지. 교계가, 흘륭한 목사님들이, 이름난 목사님, 이름난 교회, 거기도 그랬대, 또 거기도 그랬대, 또 저기도 그랬고... 그리고 나도, 내 가정도, 우리 교회도... 이러한 가슴을 안고도 절대로 거짓 목자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찌 하오리까?
이제 나는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렵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으로 살고저 합니다. 목사님! 도움이 되어 주세요! 성경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이 말씀 속에 계시도 있고, 예언도 있고, 신비도 있고, 기적도 있고, 음성도 있고, 은사도 있고, 부활도 있고, 재림도 있고, 천년왕국도 다 있는데...
말씀을 선물로 주시고, 믿을 때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회개를, 용서를, 부활을, 쓰임 받음을, 휴거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드리옵니다.
잃어버렸던 거룩도 성경대로 되찾으렵니다. 거룩이 아니면 부패입니다. 때묻은 보화를 성경대로 닦으렵니다. 점점 작아졌다고 안타까워했던 나의 면류관도 성경대로 더 많은 것으로 받으렵니다.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 - 행 20:28, 자랑의 면류관 - 살전 2:19,20, 빌 4:1, 잠 11:30, 단 12:3, 의의 면류관 - 벧전 2:11, 고후 5:10, 딤후 4:8, 썩지 않을 면류관 - 고전 9:25-27) 부활의 능력이신 주님! 성경대로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며 펜을 놓습니다.
제도화된 의식적인 생활에서 변화를 갈구하였던 한 사모의 눈물의 고백.
Bible Baptist Church International 김경환 목사
※김경환 목사님은 초대 교회 때부터 박해를 받으면서 순수한 믿음을 지켜온 성경대로 믿는 전통 침례교의 신학을 하셨으며 미국 독립침례교에서 안수받고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킹제임스성경을 기조로 한 한인 독립침례교회를 창립한 성경적인 목사님입니다. 전통 있는 침례교 목사를 비방하는 무지한 한인 목사들과 가짜 침례교 목사들에게 속지 마시고, 진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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