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리석게도 과거 역사를 통해 인간이 뭔가 잘못됐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의 타락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들 한다. 그들은 좋은 옷에 좋은 차를 타고 호화로운 집에 살면 선하게 잘 살고 있다고들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을 가져오며 정신 분석가, 심리 상담자 및 정치 지도자들은 온갖 수단을 다해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도 아니요 죄성도 갖고 있지도 않다고 어리석은 소리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소위 상황 윤리(situation ethics)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요점은 “이것 저것 중 어느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절대적 가치 기준 또는 표준 규범이란 없다.”라는 것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정해 놓은 요강에 따라 “본래부터 옳고 그른 것이란 없다.”라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고로 바로잡아야 할 일도 없는 것이다. 유일한 “죄”는 유네스코를 통해서 미국의 교육 제도를 소련식 획일 교육으로 바꾸려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공립학교라는 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동물을 사육하듯 학생들 좋은 대로 내버려 두고, 훈육이나 질서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이 글자를 어떻게 쓰고 읽는지조차 잘못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사회 안정”을 위해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진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진급”(social promotion)인 것이다. 선생들은 이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진급”을 통해 이들 낙제생들을 구제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무조건 평등만 주장하다 보니 오히려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불평등만 가져다 준 꼴이다. 1964년 소위 Civil Rights가 통과된 이래 미국 사회의 비능률은 가공할 만하다고 할 것이다. 미국의 교육이 모든 가치관을 뒤섞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의 교육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틀린 것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성경이나, 기독교, 유대교적 윤리관을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삶에 유리한 것은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실용주의이다. 이 말은 곧 어떤 일은 누구에겐 옳은 것이 될 수 있지만 누구에겐 잘못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십계명은 미국의 교육에서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공립학교 선생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주일학교 교사나 목사나 부모라고 해도 무엇이 옳은 일이고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게 하라고 가르친다. 결국 인간이 아닌 짐승을 키우는 셈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자신의 욕망대로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가정과 사회 질서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툭하면 반항하고 죽이고 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총기를 함부로 사용하여 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해를 입히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하든지 상관 없다고 가르친 결과 타락하고 윤리관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실상은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가린 채로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한고로 자제력을 내팽개쳐 버리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가르친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집단 마약 흡입, 알콜 중독, 강간, 성폭행, 살인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복지 사회의 꿈은 한낱 꿈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창세기 1-3장은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는 데서 오는 것이다. 만약 창세기 1-3장이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라면 인간은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어 있고 거듭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