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한국일보 바른교리 (64) 가정들을 파괴시키는 새벽기도의 폐단
(64) 가정들을 파괴시키는 새벽기도의 폐단 PDF 인쇄 E-mail
목요일, 04 6월 2009 20:03

든 나쁜 것은 좋은 것이 왜곡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만큼 이 말에 잘 적용되는 것도 없다. 어떤 목회자 지망생은 목회에 헌신하는 것은 새벽기도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목회자들은 주 5일에서 7일을 새벽같이 일어나서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새벽 기도는 한국 교회 안에 없어서는 안될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새벽 예배가 없는 한국 교회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새벽 기도의 폐단을 지적하면, 왜 기도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른 아침에 기도하셨다. "이른 아침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주께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라"(막 1:35). 왜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 그 시간은 세상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차지하고 우리 발에 먼지를 묻히기 전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하루 중 가장 첫 시간에 우리를 만나기를 기뻐하신다. 세상 일들이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가고 정신을 산만하게 하기 전, 가장 고요한 시간이 바로 새벽 시간이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 교회들에서 드리는 새벽 예배에서 주님과 단둘이 그런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한 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선 차 타고 교회 갔다 오는 데만도 40-60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교회에 가면 곧바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30분 동안 먼저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불이 꺼지면 깜깜해진 상태에서 통성기도가 시작된다. 기도가 “뜨거워”(?)지면 여기저기서 이상한 “방언”(랄랄랄라 셰셰셰셰)이 터져 나오고 목소리 크게 제일 길게 하는 사람이 믿음이 제일 좋은 사람인 양 너도나도 큰 소리로 기도한다. 처음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나면 불도 꺼진 상태에서 이상한 소리로 방언들을 해대는 통에 등골이 오싹하고 기분이 아주 안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거기다 사방에서 시끄럽게 주여 주여 외치고 몸을 흔들고 박수를 치고 있으니 집중하고 무언가 간구하려고 해도 기도할 제목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땐 목소리 큰 옆 사람 기도를 듣고 있다가 아예 자기 기도는 포기하고 옆사람 말끝마다 “아멘, 아멘” 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한 이삼십 분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약 2시간이 소요되었건만 주님과의 조용한 교제는 전혀 하지 못했다. 만족된 것은 자신의 “열성”밖에 없는 상태에서 교회 문을 나서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기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는가? 주님께서는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마 6:6) 실상은 이러한데도 한국 교회에서는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오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어 버렸다. 어떤 목사는 아예 새벽 제단을 쌓는 것이 하늘나라로 가는 계단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거짓말하기도 한다. 외국 교회들, 특히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행태이다.

  이러한 새벽 기도는 특히 가정에 큰 폐단을 가져왔다. 새벽 예배 때 예배당은 대부분 여자 성도들로 채워지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교회에 다녀오는 바람에 생활 리듬이 깨져 피곤을 핑계로 집안 일을 잘 돌보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새벽기도뿐 아니라 교회 집회란 집회는 빠지지 않고 며칠 코스로 기도원까지 다녀오느라 바쁘다.) 집안은 엉망으로 해놓고 자녀들 양육은 뒷전으로 한 채 교회 일에만 열심을 내는 아내를 어느 남편이, 어느 자녀가 좋다 하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아내는 남편을 주라 부르며 복종하고, 집안 일을 잘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젋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 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하라"(딛 2:4,5).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을 가정 안에서 특정한 위치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합하게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목사들이 이러한 균형잡힌 생활과 여자의 본분은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새벽 기도 열심히 나오라는 것만 강조하니, 가정 불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 아내를 나무랄 때 아내는 그것이 마치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핍박인 것으로 착각하여 더욱 굽히지 않는다. (이런 열성파 여신도들은 대개 남편을 멸시하며 자신이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며, 교회 안에서도 치맛바람을 일으켜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끝내는 가정이 깨지고야 마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본다. (이런 문제로 전화 상담을 요청하는 여신도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가정에서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 성경적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들은 가정을 파괴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새벽 기도에 빠지면 웬지 꼭 해야 할 것을 못했다는 생각에 죄인 아닌 죄인이 되기도 한다. 가정이나 사업상의 큰 문제를 놓고 또는 자녀의 입시를 앞두고 1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 제단을 쌓겠다고 서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 응답에는 엄연히 조건이 있는데도 무조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새벽에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장할 일이고, 하루 이틀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는 기쁨을 맛보다 보면 피곤함도 잊고 그 시간을 사모하여 일찍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들에서 하는 새벽기도는 이러한 올바른 기도를 완전히 왜곡시킨 것이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을 제도화하여 오히려 바른 기도생활을 막고 잘못된 열성을 부추겨서 잘못된 자족감과 자만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가장 가슴아픈 일은 새벽 기도를 매일같이 드리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구원받은 확신이 있냐는 질문에 “저는 열심히 믿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새벽기도도 나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벽기도로 구원을 받았다면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된다. 과연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구원은 복음을 믿음으로써 받는 것이요 은혜로써 받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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