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장로교 목사가 여러 권을 구입해갔다가 며칠 후에 환불을 요구해 온 일이 있었다. 이유는 은 침례교회의 성경이기 때문에 “세례”를 “침례”로 번역했으며, 세례를 베푸는 자신의 교회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그 한 단어(그것도 맞게 되어 있는) 때문에 올바른 성경을 거부하고 다시 변개된 성경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이단들이 침례를 많이 주기 때문에 침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나, 세례는 잘못된 전통이요 침례가 맞는 것이다. 이는 세례를 주는 이들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영어로는 침례와 세례가 구분 없이 “baptism”인데 이는 헬라어 ‘밥티조’를 음역한 것으로 ‘밥티조’는 ‘잠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단어를 우리말로 옮기면 잠길 “침”을 쓴 “침례”가 맞다. 씻을 “세”를 쓰는 것은 잘못인데, 이는 그것이 아무것도 “씻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례”라는 말을 씀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통해 죄를 씻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육체의 더러움 즉 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만약에 세례를 통해 죄 사함 받는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은혜”로만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례라는 행위를 통해서 의로워지고자 했던 갈라디아인 들에게 바울이 얼마나 격앙된 어조로 책망했는가? 아무리 작은 행위라도 그 행위를 통해 의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은 구원을 가로막는다.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갈 5:4). 또 침례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모형”이라고 했다. 모형이라는 것은 모델 하우스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진짜 집은 아니지만 집하고 똑같이 생긴 것, 그것이 모형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을 모형 적으로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침례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갈 2:20, 롬 7:3-10). 이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할 때(롬 10:9) 영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물을 몇 방울 뿌리는 것이 어떻게 그것을 모형으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다. 즉 물속에 완전히 잠기셨다가 다시 올라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속에서 올라오시니..."(마 3:16). 또 에디오피아 내시도 침례를 받았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속에서 올라오자..."(행 8:38,39). 어느 모로 보나 침례가 맞다. 세례를 주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베푸는 세례와 유아세례가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썩은 전통이라는 사실이다. 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치는 카톨릭 교회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주어 카톨릭 교인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교세를 확장했으며, 구원받은 성인에게만 (어린아이들도 구원받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할 경우에는 주었음) 침례를 주었던 사람들을 재침례교도라 부르며 이단시하고 박해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어릴 적에 카톨릭 교회에서 형식적으로 받은 세례를 거부하고 후에 진정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뒤에 성경대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박해받았다. 이 침례 문제 하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침례교도들이 죽어갔지만, 동시에 침례교도들이야말로 침례에 가장 의미를 적게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카톨릭이나 그리스도의 교회 등 무수한 이단들은 세례 혹은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만, 정통 침례교도들은 침례가 우리의 구원과 무관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과 연관도 없는 침례가 무엇이 그리 중요했기에 그들의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침례가 우리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주님의 명령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믿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피 흘린 발자취를 남겼던 것이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구원받은 후 즉시 침례에 순종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침례 받으라는 첫 번째 명령에 올바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명령도 신실하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 소중한 주님의 명령에 제대로 순종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