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생일로 지키는 날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몇 주 전부터 집 주위를 장식하고 카드와 선물을 준비하며 명절 분위기에 젖어든다. 어떻게 하면 이 날을 조금이라도 더 흥겹게 보낼까 고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가 되면 사회의 어두운 면이 더욱 짙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흥비를 마련하기에 혈안이 된 소매치기와 강도들이 들끓어 곳곳에서 여인들이 핸드백을 빼앗기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는가 하면, 성탄 분위기에 마음이 들뜬 청소년들은 나이트클럽과 바를 돌아다니며 술과 이성과 마약에 빠져 탈선과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부도덕과 방탕이 오히려 낭만으로 여겨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일들이 도대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모두가 크리스마스는 주님의 날이 아니라 마귀의 날이며, 마귀의 영이 도처에서 판을 치고 죄인의 마음을 장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어느 모로 보나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날에 태어나시지도 않았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을 때 그들은 밤에 들에서 묵고 있었다. "그때 그 고을에 목자들이 있었는데, 들에서 묵으면서 밤에 양떼를 지키더라"(눅 2:8). 아무리 팔레스타인의 기후가 따뜻하다 하더라도 겨울에는 양떼를 야외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춥기 때문에 10월말 이후에는 들판에서 양들을 돌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양무리를 먹일 만한 초원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목자가 직접 먹이를 구해다 먹여야 한다. 또 이때 조세 등록을 실시했는데,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을 여행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겨울은 분명히 적합한 때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일은 동지인 12월 25일이 될 수 없다. 굳이 주님께서 태어난 날을 따지자면 성경의 모든 증거로 보아 9월/10월경인 장막절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크리스마스는 사실은 바빌론 종교에서 하늘의 여왕의 아들인 태양신, 즉 바알(사탄)의 생일이다. 이집트에서는 하늘의 여왕을 이시스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그녀의 아들(태양신)이 동지에 태어났다고 믿고 그 날을 기념했다. 그들은 지구가 태양의 영향력에서 가장 멀어지는 때인 동지를 그의 생일로 정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며 우상을 숭배했던 이교도들은 이 날 상위에 호화스런 갖가지 음식을 진열하고 독한 술을 마시며 선물을 교환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풍속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 아닌가? 그들은 이 날 심지어 아기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참조). 이러한 이교도의 전통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의 생일날로 둔갑한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생일을 기념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날을 기념하라는 명령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전통은 3세기 이전까지는 교회 안에서 지켜지지 않았으나, 후에 로마 카톨릭이 기독교 귀의자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방책으로 이교도들의 축제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꾸어서 수용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날을 3월 25일로 정하고 기념하는데(성모수태고지일), 이것은 12월 25일과 정확히 9개월을 맞추기 위해 조작된 날이며, 이교도들도 이와 똑같은 날짜에 비슷한 절기를 갖고 있다. 로마에서는 이 날에 바빌론 종교의 메시야의 어머니 키빌레 여신을 기념했다.] A.D. 230년경에 터툴리안은 기독교로 개심한 이교도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자기들의 미신에 끝까지 철저했던 것에 반해 자기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에 신실하지 못한 모습을 통탄해 했다. “한때 우리들에게 생소했던 이교도의 축제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요란스레 선물을 만들어대며, 운동 경기와 연회들이 소란스럽게 열리고 있다. 이교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자기들의 종교에 신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신실한 성도들은 기독교의 변질을 막으려 애썼으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교는 진행되어 소수 지역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교회가 이교도 미신 종교의 오염 아래 침잠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날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보낼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그분의 “탄생”이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고전 11:26).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과, 죽은 자들로부터 셋째 날에 살아나는 것이 기록되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니라...너희가 이런 일의 증인이니라"(눅 24:4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