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이나 주술적인 형태를 갖춘 종교 행위를 샤머니즘이라 부른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미신”이라 부르는데, 타종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내에서도 성경적 기독교가 정착되지 못한 모든 곳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 기독교의 흐름을 살펴보면 “배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의 신앙 태도는 다른 종교나 심지어 무속 신앙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거나 문제 해결을 원할 때면 산 속 기도원이나 교회 부흥집회에 참석함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고” 문제를 해결 받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열성은 산당을 찾고 “지성이면 감천”을 믿는 이교도의 종교적 열성과 별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마땅히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들은 조상 대대로 미신을 따르던 습성에 젖어 자기의 열성으로만 섬기려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이교도의 “알지 못하는 신”(행 17:23)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해탈을 한 후 몸이 썩어진 부처와 다르며, 자비도 사랑도 인격도 없는 인도의 3억 3천의 신들과 다르고, 유물론자와 무신론자의 죽어 버린 신과도 다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세가 알았듯이 “나이신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고, 다윗이 알았듯이 두려우신 분이며, 요한이 보았듯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베드로가 보았듯이 무덤에서 일어나셨으며,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네 차례에 걸쳐 설교했듯이 알 수 있는 분이시고, 욥이 알고 우리가 믿듯이 언젠가 이 땅에 다시 서실 바로 그분이시다(욥 19:25). 그러나 배교한 기독교는 하나님 알기를 거부하고 이교도들의 종교를 그대로 흉내 내려고 한다(호 4:6).
교회에서 목사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하나님의 대리자’의 위치를 자처하며, 마치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듯이 “귀신”을 내쫓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령을 빙자하여 이상한 개구리 소리와 뱀 소리를 내면서 무당이 굿을 하듯 심령부흥집회를 인도함으로 하나님을 질서도 순서도 없는 “혼란의 창시자”(고전 14:33)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비 없는 구름처럼 거짓 은사를 자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명예와 헌금 액수로 기꺼이 바꿔치기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몇 번이고 그런 집회를 반복함으로써 진리를 알아야 할 성도들에게 성경을 닫아 버리고 그들은 굿판을 지켜보는 구경꾼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야말로 목자이기를 포기한 채 더 이상 양무리를 먹이기를 거부한 자들이다(렘 23:1-2). 그들은 올바른 성경이 있어도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천국 문을 닫아 버리는 바리새인들과 자신들이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배교한 기독교는 그들이 “성전”이라고 부르는 예배당 건물의 크기와 같이 비대해졌고, 과부의 두 렙타를 빼앗으며, 차지도 덥지도 않고, 말씀도 하나님도 없고, 사탄도 영적 전쟁도 없으며, 진리도 건전한 교리도 없는 자들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교회는 양 우리가 아니라 동물원이고, 그들의 목사는 목자가 아니라 삯꾼(요 10:12)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사귀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배교한 기독교인들로 인해 하나님은 지금도 믿지 않는 자들의 입 가운데서 모독을 받고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배교한 기독교에는 오직 샤머니즘만이 있다. 은사주의 집회, 내세를 부정하고 지옥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것, 부패한 교리, 종교적 열성을 위주로 하는 새벽기도, 철야, 선행 등. 샤머니즘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며, 모든 종교에 무리 없이 수용이 되는데, 그것은 샤머니즘의 근원이 인간의 악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란 만사형통이고 내세관이 없는 샤머니즘과 같이 지극히 현세적이다. 이 시대 어디에서도 믿음을 찾을 수 없고, 건전한 교회와 진리가 교회들에게서도 거부당했기에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성경으로 돌아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