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갈급한 많은 한인 교인들이 목사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너도나도 '뜨레스디아스'에 참여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3일”을 뜻하는 뜨레스디아스는 사실상 카톨릭에서 주관하는 운동으로서, 3일간 “속세”에서 떠나 그들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카톨릭의 은둔적 수도원 제도의 연장으로, 대부분 산 속에서 열림)에 참여함으로써 소위 “영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뜨레스디아스의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카톨릭의 것이며, 개신교 교회들을 카톨릭교회로 돌아가게 만들려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죽은 카톨릭 의식주의에 기초한 이 마귀적인 의식을 받아들인 무지한 개신교 목사들은 영적 생명을 인위적으로 흉내 냄으로써 말씀에 의한 참된 구원과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대체하고 있다.
이 운동은 참가자 개개인에게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롬 1:16,17)을 성경적으로 제시해 주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목사나 장로들, 의사나 변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와서 참가자들을 섬겨 주고 발까지 씻겨 줌으로써 대접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또한 십자가에 직접 못을 박게 하는 의식, 컴컴한 방안에서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떨어져 지낸 가족들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것 등 정작 말씀은 없고 감정 자극하기에만 바쁘다. 여기에 다녀온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녀와서 처음에는 뭔가 달라진 것 같지만 3개월, 6개월이 지나면 다시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당연한 이유는 감정만 고무되었을 뿐 진정으로 거듭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 참가한 두 사람의 예를 들려고 한다. 첫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데 누나의 강권으로 미국에 온 김에 뜨레스디아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건강을 잃은 상태였던 그는 절대자에 의지하고 싶은 심정에서 담배도 가져가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첫날 모 교회 K목사와 무희들(?)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나와 춤추며 노래하는 것이 나이트클럽 밤무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광경에 아연실색한 그는 환멸을 느껴 몰래 담배를 숨겨 가져온 옆 사람에게 얻어 담배만 실컷 피우다 내려왔으며, 그 뒤로 복음에 마음의 문을 더욱 더 굳게 닫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지극히 열성적인 교인으로, 레마 선교회니 신유 집회니 안 다녀 본 데가 없었고 뜨레스디아스도 다녀왔건만 생활의 변화는 잠시뿐 다시 습관적인 죄로 돌아갔으며, 구원의 확신도 없이 자신이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에게 로마서 등에 제시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한 뒤 요한일서 5:11,12,13 말씀으로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줄 수가 있었다. 뜨레스디아스처럼 사람의 감정이나 자극하고, 선명한 복음의 제시 없이 며칠간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요 마귀적인 것이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결국 지옥으로 가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뜨레스디아스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 사도 임명장을 주어 그 사람이 마치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죄인은 복음을 마음으로 믿을 때 거듭나는 것이며, 오직 거듭난 자만이 죄를 이기고 변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아침에 별안간 옛 습관이 다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로써 주님과 교제하고, 습관적인 죄를 그날그날 자백하고 버리며,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늘 성령 충만을 구함으로써만이 죄를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뜨레스디아스가 준 거짓 확신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