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8 6월 2009 07:35 |
지난주에 이어 미국의 유명한 그리스도인 저자인 Dave Hunt의 이란 책에서 조용기 목사의 위험한 마귀적 교리를 지적한 것을 인용하니, 편견을 갖지 말고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pp 125-126 “하나님은 물질세계 이상의 어떤 정신세계에 거하지도 않으시며 속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어느 것보다도 전적으로 다른 순전한 존재의 영역에 계시다. 창조주와 물질적이든 영적이든 그의 피조물은 분리되며 서로 구별된다. 진짜 초자연적인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오며 심령 현상은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로 말미암은 것인데, 인간을 미혹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초자연적 능력을 접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이러한 차이점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지만 기초적인 신비술 이론이나 자연적인 종교의 변증론 혹은 마법 술을 제시해 왔다. 그는 하나님이 전체 물질세계를 “포함”하므로 자신으로부터 물질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 일을 행하시는가? “품음”(incubating)으로써 행하신다. 이 말은 구상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조 목사의 용어이다. ‘창세기에서 주의 영이 알을 품는 암탉같이... 품고 계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기술, 곧 구상화하는 것이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창조하신다고 결코 암시하지 않으며 전혀 가르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어떤 특정 방법에 제한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결코 어떤 방법으로도 제한될 수 없으므로 부적절하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어느 정도 이와 동일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미혹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조 목사가 추론하는 과정에서 다음의 잘못은 그전의 추론, 곧 인간도 “4차원”의 영적 존재이므로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과 같이 실재를 구상화하고 품어서 창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추론보다 더욱 나쁜 것이다. (The Fourth Dimension)의 속편에서 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리는 기도에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처럼 완전하게 된 응답을 구상화하고 꿈꾸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기도하는 마지막 결과를 구상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방법으로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을 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상황을 구상화하는 과정을 이용하여 아브라함을 도우셨다... 연합된 사고를 통한 구상화로써 아브라함은... 자신의 (미래) 자손들을 품고 자기 마음으로부터 의심을 쫓아낼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은 우리가 구상화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구상화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라면 성경이 구상화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다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으며 그런 개념은 언급되지도 설명되지도 가르쳐지지도 않는다. 이에 관해서 우리는 후에 더 많이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분명히 이해해야 되는 사실은 물질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마음속에서 생생한 영상을 구상화한다는 개념 전체를 성경이 아니라 모든 신비주의 문헌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가장 기초적인 샤머니즘의 개념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목사가 구상화를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심리학자들이 치료법에서 그리고 성공과 동기부여 운동 교사들이 가르치며 이것은 또한 치유 혹은 기억의 치유와 심지어 원거리 치유를 위해 이용되는 주요 기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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