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27 6월 2009 11:30 |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의 기도 생활을 인도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롬 8:26,27). 이 말씀은 우리가 비록 구원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처럼 완전하지 못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의 중보하심 없이는 바른 기도를 항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탄의 사자가 준 가시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며 주님께 그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게 됨이니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매우 기쁘게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즉 사도 바울이 지극히 위대한 계시들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에 한 가시를 주시고 그로 인한 바울의 약해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고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사도 바울이 세 번씩이나 드린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약함과 고난을 통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그때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미래에 가장 좋은 열매를 가져오는지 모르고 또 막상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알고 하는 것 같지만 혼동 속에서 기도할 때가 많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가 부족하고 모르는 부분들은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셔서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되고 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무지하고 욕심 많은 은사주의 목사들은 성령님께서 신음하시며 우리를 중보하신다는 것을 이상한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의 영에 속아 마귀에게 기도하도록 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이상한 뱀소리(?)들을 내고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 영의 신음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넌센스인가는 이 구절 자체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여기서 신음이 “말할 수 없는” 신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신음은 “which cannot be uttered” 즉 우리가 입밖으로 발설할 수 없는 신음이다. 그런데도 은사주의자들은 그것을 “방언”을 통하여 말한다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성령의 중보를 받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며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일일이 파악하신다. 비록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지만 성령의 생각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으로 드리는 부족한 기도가 성령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축복의 약속인 것이니 독자들도 이상한 마귀의 방언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말씀으로 구원받고 이 성령님의 중보를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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