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능력은 충분하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도행전 8:18에서 마술사 시몬이 성령님의 능력을 돈으로 사고자 했을 때 심히 책망받았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네 돈과 더불어 망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이 일에 네가 참여하거나 맡을 것이 없으니, 이는 네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너의 이러한 사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혹시 네 마음의 생각이 용서받게 되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에 젖어 있고 불의에 묶여 있도다.” 하니 시몬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주께 간구하여서 당신들이 내게 말한 일이 임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더라”(행 8:20-24). 성령님을 모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흉내를 잘 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속이지는 못한다. 주님께서는 인간적인 열심, 육신적인 노력을 결코 거부하신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모방하지만 그 능력을 모방하는 것은 폭죽을 쏴 올리기 위해 우주센터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모방하고 흉내낼 때 성령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결코 속이지 못한다. 성령님의 능력에는 박해와 고난이 따른다. 바울은 빌립보서 3: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내가 그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과(그리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의 고통의 친교를 알아 그의 죽음의 본을 따르려 함이며”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며 죽어가는 죽음 앞에 “존경할”만 하거나 돈이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소위 “능력충만”, “성령충만”을 외치는 자들의 허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성령님의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며(엡 1:13-14) 우리 안에 들어와 영원히 계시지만(요 14:16), 성령님의 능력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므로 또 성령님을 소멸하므로 잃어버릴 수 있다. 구약에서 좋은 예로 삼손의 삶을 들 수 있다. 재판관기 16:20에서 우리는 삼손이 한때 성령님의 능력에 대하여 알았지만 어떻게 성령님의 능력을 잃어버렸는가를 알 수 있다. 영적 능력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내어던져 버리기에 적합한 것이다(마 5:13). 이것이 왜 그렇게 성령님께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사도행전 2:38에 대해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가 없고 메말랐으며 능력이 없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교사로서 선생님으로서의 성령님에 대해 공부해야만 한다. 성령님은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교사 중 한 분이다. 성령님은 이 시대에 있어 영적인 일에 관한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우선 성령님은 교사로서 절대 필요하신 분이다. 고린도전서 2:11-14은 성령님만이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가르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선생님이시고 안내자이시다.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1-12). * 초대 교회 때 유대인들을 위해 주어졌던 방언(외국어)의 은사는 사도들의 사역과 함께 끝이났고 오늘날 교회들에서 하는 이상한 방언(알지 못하는 소리)은 마지막 때 미혹하는 마귀의 영이 준 거짓 은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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