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매 없이 계속 혼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들은 열매가 없고 그리스도인은 능력이 없다. 사람들은 예배드리러 간다. 십일조를 바치며 제단 앞에 기도하러 나온다. 방언을 말하고,. 구르고, 떠들어 대고, 사랑, 사랑, 사랑을 외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지식으로 열 사람을 인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교회를 채우는 사람들은 울부짖고 손을 들어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노래하고 세상과 연합한다. 우리에게는 열매가 필요하다.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마다 그 분께서 제거해 버리시고...”(요 15:2). “만일 열매를 맺으면 좋거니와 맺지 아니하면 그때는 잘라 버리소서”(눅 13:9). 회개한 후 이 지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바울은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갖는 것이 “훨씬 좋으나” “육신에 남아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지상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는 이방인들 가운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을 지금 당장 본향으로 데려가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경우 질문을 하나 하겠다.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그리스도인을 남겨 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장소나 차지하라고? 어떤 사람에게 당신 아들은 대학에서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 대답이 “공간”이나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회개한 후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매 맺는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면 열매 맺을 때의 특권을 누릴 수 없다. 열매 맺지 못하는 것과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 누가복음 13:7에서 농부가 와서 “보라, 이 삼 년 동안 내가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나...”라고 말하였고 열매를 찾지 못하자 “잘라 버리라.”고 말하였다. 야고보서 5:7에서는 “보라, 농부들이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라고 기록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참된 열매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 참된 열매는 갈라디아서 5:22-23에 있는 열매이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 결코 사도행전 2장이나 고린도전서 14장이나 마가복음 16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참된 열매를 언급하지 않으셨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2:33에서 예수님은 나무는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은 은사가 아니다. “은사들”은 모방할 수 있다. 진짜 먹을 수 있는 열매는 모방할 수 없다. 열매는 뿌리 없이 맺을 수 없다. 방언이나 감정적인 경험이나 침례에 관한 교리로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없다. 열매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민수기 13:26에서는 카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난 열매를 보여 줌으로써 좋은 땅임을 입증하였다.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것은 합당한 열매이지 은사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외형이나 신앙고백은 좋을지 몰라도 그 나무가 망고 나무인지 사과 나무인지, 그 사람이 성도인지 아니면 배교한 혹은 구원받지 못한 은사주의자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열매이다. 마태복음 7:16-20에서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성도들은 어떠한 육신의 일들도 맺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자주 깨닫는 것은 우리의 삶이 축복과 저주, 단맛과 쓴맛을 같이 내는 모순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에는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되느니라”(약 3:10)고 말씀하신다. 열매의 원천은 하나님 안에 있다. “나에게서 네 열매가 얻어지는도다”(호 14:8).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역시 그렇게 되리라”(요 15:4).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터를 닦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 내리고 있는 한 열매가 풍성하다(엡 3:1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