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3 6월 2009 12:03 |
이외에 다른 말을 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란아다.” 이것이 성경이다. 이것이 문맥에서 보여주는 성경적 진리이다. 이 글을 읽고 한 마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은사주의자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성령님이 아니라 마귀의 영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마귀의 영으로 채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성경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거절하기를 두려워한다. 거부하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세뇌된 무지 속에 머무르게 되며 남은 여생을 고스란히 사탄에게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성경을 읽지도, 가르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 구절은 제멋대로 인용한다. 이들이 말씀을 인용할 때는 문맥에서 그 구절이 의미하는 바를 결코 인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교회도 같은 구절에 의해 넘어진다. 이들은 사도행전 2:38이 구원계획이라고 가르친다. 사도행전 2:38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산상설교”(마태복음 5,6,7장)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 버린다. 기름 칠해진 베어링 위를 구르는 것처럼 지옥에 가고자 한다면 사도행전 2:38을 붙들고 있으면 된다. 사도행전 2:38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의롭게됨과 구속에 대한 언급이 없다. 새로운 출생, 거듭남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영적 할례에 대한 언급도 없고 그 곳에서 설교했던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몸에 대하여 계시받지 못했다. 어떤 누구라도 사도행전 2장의 “사도적 믿음”과 “사도적 실행”에 사람들을 붙잡아 놓으려 한다면 그는 사탄이 이 지상으로 보낸 적들 중 가장 악한 적이다. “오순절”은 과도기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침례인 요한으로부터 최소한 사도행전 10장까지 수년간 계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서 사도행전 2:38이 바로 “구원계획”임을 입증하려 한다면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아무도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리이까?”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 질문은 사도행전 16장에 나온다. 믿지 못하겠다면 즉시 찾아 보라. 사도행전 2장 전체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 한 마디라도 언급한 사람은 없다. 그 질문은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성령침례가 “방언”은 아니지만 “두 번째 은혜”라고 믿기도 한다. 또는 성령침례는 “두 번째 은혜”이며 이것이 방언으로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무디, 토레이, 피니처럼 회심과는 별도로 제 2차적인 체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내세운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 구절은 사도행전 8:15-16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과도기 기간에 포함되는 구절이라는 점을 파악하면 쉽게 설명된다. 이 과도기 기간은 율법에서 은혜로 전환되는 기간이고 아들 하나님의 사역에서 성령 하나님의 사역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므로 이 기간에 언급된 구절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기 위한 확정된 교리로 가져와서는 안된다. 사람의 경험을 근거로 교리를 세우는 일은 참으로 위험하다. R.A. 토레이(혹은 D.L. 무디)가 체험했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교리적 신앙을 세우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특정한 일들을 위해 부름을 받았고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의 기름부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위해 부름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러한 일이 없는 것이다. 방언을 말했던 사람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500,000명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