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중앙일보 은사주의(샤머니즘)를 배격하자 (22)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오순절 운동 100년의 역사 (11)
(22)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오순절 운동 100년의 역사 (11) PDF 인쇄 E-mail
화요일, 09 6월 2009 19:41

사도행전 2,8,10,19장의 방언의 의미

 

(4) 사도행전 19장은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역을 통해 기록된 성령의 역사이다. 19장의 대상은 요한의 회개의 침례를 받은 “유대인”이었다(1,3,5,7절). 바울은 이들에게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인들처럼 성령이 있는 것조차 모르며, 단지 요한의 침례만을 받은 상태이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믿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 방법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10장과 다르게 2장과 8장에서처럼 믿고 침례받은 후에, 즉 중생의 성령침례를 받은 후에 유대인인 그들에게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표적으로서 안수하여 방언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사도행전 19장의 방언 역시 그 목적이 뚜렷하게 유대인을 위한 표적이었다. 정리해 보면 방언이 나타난 사도행전 2,10,19장은 모두 유대인들을 믿게 하기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성령침례와 성령충만에 대한 무지

  죄인이 구원받을 때 성령께서는 그의 죽었던 영을 살리시는데 이것이 “거듭남”(중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그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 주시는데 이것이 “성령침례”이고, 성령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영을 가득 채우셔서 그분의 능력과 지식과 지혜로 그를 인도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영적인 상태가 “성령충만”이다. 중생과 성령침례는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역사이지만, 성령충만은 반복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는 역사이다. 또한 성령충만은 늘 같은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할 수 있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사도행전 2:4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방언을 하도록 역사하셨으나(“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그때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백성의 관원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여”(행 4:8)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 진동하더니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더라.”(행 4:31) “그러나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주시하여 우러러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고”(7:55) “아나니아가 길을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그에게 안수하며 말하기를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던 길에서 네게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너로 보게 하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고 하니”(9:17) “그때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13:9) 등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해도” 방언을 하지 않도록 역사하셨다. 그런데 오순절주의자들은 중생과 성령침례, 성령충만을 혼동하여 지난 100년 동안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왔고, 마귀들의 교리들을 가르쳐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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