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동안 “시무언” 코너에 이런 글들이 실렸다. “교회에서 병든 자가 고침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무속 신앙 따위로 취급하여 무시합니다. 또 이적을 사모한다 하여 크게 잘못된 것처럼 매도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는 예수의 말씀뿐 아니라 능력과 그가 역사하시는 그의 모든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능력과 이적은 교회의 고유한 권능입니다.” “성도들의 심령이 변화되고 신자들 가운데 한량없이 큰 이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이적을 보여야만 참 예수의 교회입니다. 이런 증거가 없으면 단순한 종교일 뿐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글쓴이는 은사주의자들처럼 기적을 행하지 않고 성경만 가르치는 교회를 “세미나 장소” 같은 곳이요 “단순한 종교” 다시 말하면 “거짓 종교”(참 종교는 하나뿐이므로)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점령한 은사주의 교리는 잘못된 성경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모든 것(특히 기적)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모방하기 원하는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렇다면, 한국인인 우리도 이방인인데,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안 전하고 유대인에게만 전해야 할 것 아닌가?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문둥병자들을 깨끗게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어 쫓으라.” 왜 문둥병자는 아무도 낫게 하지 못하는가? “너희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라. 너희의 돈 주머니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 그런데 안수기도 해 주고 거액의 감사헌금은 왜 받는 것인가?(마 10:5-10) “너희(사도들)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마 10:40)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요1:12), 여기서는 사도들을 영접하면 그것이 곧 예수님,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C목사나 K목사 같은 사람들을 “영접”하면 그것이 곧 구원받는 것인가? “주의 겉옷 단만이라도 만지기를 간청하였으며, 만지는 자는 모두 온전히 나으니라.”(마 14:36). 그런데 왜 그들은 낫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가? 은사주의자들의 신유 집회가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낫지 않은 것을 나은 것처럼 “연기”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예수님께서 표적과 이적이 동반된 천국 복음을 전하신 사역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메시야를 죽이자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된 것이다. 또한 십자가 이전에 유대인에게 전해진 복음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는 복음(고전 15:1-4)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자기의 믿음과 행위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은사주의 목사들에게는 병자를 100% 낫게 해 주는 능력이 없다. 그들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들과 표적들이 행해지더라.”(행 2:43) “정녕 사도의 표적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력 행함으로 판명되었거니와”(고후 12:12) 은사주의 목사들을 향해 성경은 반문한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기적들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들을 가졌겠느냐? 다 방언들을 말하겠느냐? 다 통역하겠느냐?”(고전 12:29-31)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사도도 아닌 자들이 사도로 자처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이적과 표적만 따라다니며 더러운 영에게 미혹당하고, 동시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길만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살후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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