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화(마음속에 원하는 바를 생생하게 그리는 것)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간에 오컬트(악령의 힘을 이용해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기법이며 이는 사실상 인간을 그의 창조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신으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조용기 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예를 성경에서 끌어오려고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예들은 근거가 없는 추측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일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을 보게 하시고 그에게 그의 씨가 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데서 조용기 목사는 아브라함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구상화하기 시작했으며 이 환상은 이삭의 출생으로 이루어졌다고 제멋대로 상상한다. 조용기 목사는 이와 같은 개념 위에 자신의 모든 구상화 교리를 세우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별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가 볼 수 있던 모든 것은 자기 자손의 얼굴이었으며 갑자기 그는 그들이 그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는 것을 느꼈다고 상상한다...그는 눈을 감았을 때 잠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별들이 자기 후손들의 얼굴로 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러한 그림들이 그의 마음에 계속해서 떠올랐으며...그의 4차원의 일부분이 되었다...이들 환상과 꿈은 백 살 먹은 그의 육체를 지배했으며, 마치 그의 몸이 젊은이의 몸처럼 변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주석이 아니라 순전히 공상이다. 조용기 목사의 가르침은 오컬트 전승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깊게 대조(바울의 교훈을 가지고 베뢰아 사람들이 한 것처럼)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교의 씨앗 중의 하나이다.이러한 자세가 구상화를 비롯해 여러 형태의 마법들을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 저자들은 자신들의 구상화 기법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하나”(잠 29:18)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환상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위해 원하시는 때와 방법으로 그분이 선택한 선지자에게 주시는 환상을 말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생생한 형상을 몽상하여 자기 자신의 “환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사람이 스스로 구상화한 “환상”을 만들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 환상을 존중하셔야 한다는 거짓된 교훈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용된다. 예레미야 23:16에서 하나님은 이러한 오용을 경고하신다.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경청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로 우쭐하게 하며, 그들 자신의 마음의 환상을 말하고 주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아니하느니라.”
모든 샤먼(무당)은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구상화하는 것이 영적 존재들(악령들)과 접촉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마지막 결과를 항상 구상화해야 한다...만일 당신이 분명하게 당신의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그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실재가 될 수 없다...우리는 우리 사람들에게 성공을 마음속에 그리는...방법을 가르쳐왔다...구상화를 하고 꿈을 꿈으로써 당신의 미래를 품을 수 있고 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늘날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많은 거짓 목사들이 구상화 형태의 샤머니즘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고 있는데, 이러한 거짓 교리에 대한 분별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바이다. (전 세계 50만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읽은 <기독교 속의 미혹>(데이브 헌트 저)에서 발췌)